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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 하나의 제국이 셋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뿌리, 프랑크 왕국 이야기!

by 알렉시안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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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 하나의 제국이 셋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뿌리, 프랑크 왕국 이야기!

안녕하세요! 😊 세계사나 유럽 여행에 관심 많으신 우리  이웃님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 다르시죠? 와인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 맥주와 자동차의 나라 독일, 파스타와 유적의 나라 이탈리아! 🍝🍷🚗

 

그런데 이 세 나라가 아주 오래전에는 하나의 거대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프랑크 왕국, 특히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시절의 이야기랍니다. "유럽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이 위대한 황제가 다스렸던 광활한 영토가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반이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역사의 갈림길로 저와 함께 떠나보시죠! ✨


I. '유럽의 아버지', 카롤루스 대제와 프랑크 왕국

먼저 프랑크 왕국과 카롤루스 대제에 대해 알아야겠죠?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한 갈래인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예요. 여러 부침을 겪다가 8세기 후반, 카롤루스 대제(프랑스어로는 샤를마뉴, Charlemagne)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

 

카롤루스 대제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어요. 그는 정복 전쟁을 통해 서유럽의 대부분을 통일했고,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을 아우르는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답니다. 얼마나 넓었는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자랑했죠!

 

그는 단순히 땅만 넓힌 것이 아니라, 문화를 부흥시키고(카롤링거 르네상스!),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유럽의 기틀을 다졌어요. 800년에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관을 받으며 명실상부 유럽의 지배자로 인정받았습니다. 👑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1


II. 위대한 황제 사후, 흔들리는 제국과 '분할 상속'의 전통

카롤루스 대제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있을 때는 제국이 하나로 뭉쳐있었지만, 문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였어요. 그의 뒤를 이은 아들 루트비히 1세(경건왕 루이) 시대부터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프랑크족의 '분할 상속' 전통 때문이었어요. 이게 뭐냐면,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들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는 풍습이에요. 이게 왕위 계승에도 적용되다 보니, 루트비히 1세가 죽자 그의 세 아들이 아버지의 광활한 제국을 나눠 갖겠다며 서로 다투기 시작한 거죠. ⚔️ (마치 부잣집 아들들이 아버지 유산 놓고 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장남인 로타르 1세, 둘째 루트비히 2세(독일왕 루트비히), 막내 카를 2세(대머리왕 샤를) 이 세 형제는 서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내전을 벌였습니다.


III. 제국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순간: 베르됭 조약 (843년)

형제간의 길고 지루한 싸움은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Treaty of Verdun)**으로 일단락됩니다. 이 조약은 프랑크 왕국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역사적인 결정이었어요. 바로 이 조약이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 서프랑크 왕국 (West Francia): 막내 카를 2세가 차지했어요. 이 지역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프랑스 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 동프랑크 왕국 (East Francia): 둘째 루트비히 2세가 차지했어요. 이 지역은 나중에 독일 왕국의 모태가 됩니다. 🇩🇪
  • 중프랑크 왕국 (Middle Francia 또는 로타링기아): 장남 로타르 1세가 황제의 지위와 함께 차지했어요. 이 왕국은 서프랑크와 동프랑크 사이에 길고 좁게 끼인 땅(북해 연안부터 이탈리아 북부까지)이었어요. 마치 샌드위치처럼요! 🥪 이 중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이탈리아 왕국의 기반이 되었죠. 🇮🇹

베르됭 조약 (843년)


IV. 나뉜 제국의 미래: 프랑스, 독일, 그리고 분쟁의 씨앗

베르됭 조약으로 세 개로 나뉜 프랑크 왕국은 이후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 서프랑크 왕국은 카페 왕조 등을 거치며 점차 중앙 집권적인 프랑스로 발전해 나갑니다.
  • 동프랑크 왕국은 여러 제후들의 힘이 강했지만, 오토 1세 이후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며 독일의 정체성을 형성해 갑니다.
  • 문제는 중프랑크 왕국이었어요! 길고 좁은 영토는 방어하기 어려웠고, 로타르 1세 사후 그의 아들들에게 다시 분할되면서 더욱 약화됩니다. 결국 이 지역(특히 로렌, 알자스, 부르고뉴, 이탈리아 북부 등)은 오랫동안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힘겨루기 대상이자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죠. 우리가 아는 알자스-로렌 지역 분쟁 같은 역사적 갈등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여기서 찾을 수 있답니다.

결국 카롤루스 대제가 꿈꿨던 통일 제국은 그의 사후 오래가지 못하고, 분할 상속 전통과 형제간의 다툼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서유럽 국가들의 밑그림을 그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3


V. 결론: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럽의 거목들

어떠셨나요? 😊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라는 개성 넘치는 나라들이 사실은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었다는 사실! 참 흥미롭지 않나요?

 

베르됭 조약으로 인한 제국의 분열은 단순히 영토를 나눈 것을 넘어, 이후 수백 년간 유럽의 정치, 문화, 민족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유럽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프랑크 왕국의 이야기가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오늘 이야기가 우리 이웃님들의 역사 상식 창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또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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